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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한글

지난 토요일(9일)은 한글날이었다. 마침 대체 공휴일로 지정돼 한국에서는 모두 월요일까지 연휴를 즐겼지만 원래 과거 공휴일로 지정되는 데에는 엎치락뒤치락 ’국군의 날’과 함께 뒷북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세종대왕께서 반포하신 날은 근 600년 전 일이다. 언어는 있는데 글자가 없어 모두 몇 천 년 동안 이두(吏讀)로 토를 달아가며 중국 글자만을 사용하다가 이제 글문이 트였다는 것은 진정 조선인으로서의 첫걸음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워낙 무지렁이로 살아온 일반 백성이 이를 접할 기회가 없어 본격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역설스럽게 일제 치하에서 한자와 한글을 혼용한 신문 ‘가갸어’를 통해서다. 그 시대의 문맹률은 80%로 문맹 해소에도 일조하였는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풍비박산을 맞아 한글은 한동안 완전 소멸하였다가 해방과 함께 다시 탄생하였다. 당시 함경도 오지까지 끌려가 옥고를 치른 주시경의 제자 최현배와 이희승 등의 선각자들은 죽은 한글을 다시 살려낸 제2의 세종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우리가 책에서 자주 접하는 훈민정음 해례본도 처음 발견 된 게 그 당시다.   그렇게 어렵게 다시 탄생한 한글은 불과 백 년도 안되어 이제는 언어의 범람으로 한글 누더기 시대가 되었다. 언어가 신문 방송을 위주로 따라 하는데다 외래어까지 들어오니 표현할 수 있는 글이 그 뒤를 따라간 격이다. 제대로 된 글이 선행을 하며 방송 언어가 뒤따라야 하는데 교과서를 집어내 던진 불량아가 된 격이다. 국립국어원이 오래 전 생기기는 하였으나 무슨 통제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방송은 제멋대로다. 더욱 가관인 것은 외래어인 경우 영어나 불어를 쓰면 지식인 대접을 받는데, 부지불식간 일본어라도 한마디 하면 외계인 취급을 당한다. 아더메치란다. 요즘 주로 정치인들이 좋아하는 내로남불은 이미 고전화 되어 이제는 줄여서 말하는 것이 의식화됐다. 꼰대라는 말도 조금 있으면 사전화되어 조만간 사전도 듣보잡이 될 차례다. 한참 듣다 보면 요즘 세대의 언어라지만 차라리 중국처럼 ‘문자개혁위원회’가 있어 강제 통일화시키는 것도 좋을 듯하다.   또 하나 한글의 어려운 점은 띄어쓰기에 있다. 아마 단어 뜻보다 더 어려운 문제 풀이 같다. 영어같이 단어마다 다 띄어 쓰거나 아니면 중국 글자 모양 아예 다 갖다 붙이면 편리하겠는데 한글은 악보 모양 음표를 이어주는 음운 레가토(legato)가 있다. 따라서 표현력이 다양하여 한국인 특유의 감수성 발휘(software)를 하는 데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한글 학교를 통한 2세 교육열이 대단하다. 나는 시카고 집 앞에 약 천명 가량이 나오는 큰 교회가 있어 오래 전 한글 선생을 한동안 한 기억이 있다. 학창 시절 국어 교직 과목을 한 죄로 교회는 자주 나가지는 않았으나 열심히 가르치는 젊은 교회 선생님들을 보고 양심범으로 반강제적으로 차출이 되었다. 그렇다고 코흘리개를 담당하기에는 너무 무리해 무엇을 가르칠까 생각하다 초등학생들을 컴퓨터 실에 모아 놓고 화면에 뜨는 한국 전래 동화에 대해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특히 개구리 이야기에 대한 아이들 반응은 요즘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급으로 관심을 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당에 모아 놓고 무궁화 게임도 한바탕 할 걸 후회한다.   교회에서의 모든 활동은 자원봉사다. 꼬맹이가 대부분인 어린이를 상대로 하는 한글 학교 선생님들은 육체적으로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많은 나라의 이민 교회가 있지만 아마 한글 학교가 가장 극성스럽지 않나 생각한다. 고성이 난무하는 혼탁한 광화문 길거리에 나 앉아 계신 세종대왕께서는 차라리 호반의 도시 시카고로 가시는 걸 원할는지 모르겠다. (hanprise@gmail.com) 한홍기

20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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